매년 부활절 주간이 되면 필리핀 루손섬 남부의 작은 섬, 마린두케(Marinduque)는 하나의 거대한 야외 무대로 변신한다. 화려한 가면과 로마 병사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여정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축제. 바로 필리핀의 대표 부활절 행사인 모리오네스 축제(Moriones Festival)이다.

모리오네스 축제는 성경 속 인물인 성 롱기누스(Longinus)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성 롱기누스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찌른 로마 병사였지만, 그 순간 눈이 멀었던 그의 시력이 회복되면서 개종하고 순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참가자들은 이 로마 병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가면과 갑옷을 입고, 수난극을 재현하며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 축제의 이름인 '모리오네스(Moriones)'는 병사들이 쓰는 모리온(Morion)이라는 투구에서 유래했다. 대부분의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나무로 정성스럽게 제작된 가면을 착용하고, 마치 영화 속 전사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행진에 임한다. 그들이 연기하는 수난극은 단순한 쇼가 아니다. 신앙과 문화,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어우러진 살아있는 전통이다.

주요 행사 장소는 마린두케의 보악(Boac), 모그포그(Mogpog), 가산(Gasan)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퍼레이드와 연극이 이어지며,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관광객들은 로컬 푸드와 특산품을 즐기고, 가면 만들기 워크숍이나 성경 이야기 연극에 참여하며 진정한 필리핀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이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에 그치지 않고, 필리핀의 대표적인 성주간 축제이자 국제적인 관광 이벤트로 성장하고 있다. 종교적 의미를 담은 퍼레이드와 예술성이 뛰어난 가면의 조화는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가면 뒤에 감춰진 신앙,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십자가의 이야기.

모리오네스 축제는 필리핀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예술적 감성이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다.
다가오는 부활절, 만약 색다른 경험을 찾고 있다면, 마린두케 섬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를 직접 눈으로 담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