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2023-07-24 0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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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판결] 62년 만에 폐지된 ‘간통죄’…대한민국 결혼·연애관 확 바꿨다
내용

1953년 제정된 ‘간통죄’ 조항, 2015년 2월 26일 위헌 결정
간통 혐의로 징역형 받은 ‘사법연수원 불륜남’ 항소심 무죄
간통죄 폐지됐어도 ‘외도’는 불법…손해배상 청구 가능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2011년 혼인신고를 마친 배우자가 있는 신모씨는 이듬해 사법연수원에서 동료로 만난 A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A씨에게 접근한 신씨는 혼인신고 1년 만에 외도를 저질렀다. A씨와의 부적절한 밀월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신씨 장모 B씨가 이들의 관계를 눈치챈 게 파국의 원인이었다. 장모는 A씨와 접촉해 “앞으로 신씨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 신씨와 자기 딸이 서둘러 결혼할 수 있도록 날짜를 앞당겨 예식 장소를 예약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혼인 관계는 결국 끝이 났다. 피해자(신씨 배우자)가 외도 사실을 알고 난 뒤 협의 이혼 의사 확인 신청서를 접수했고 이후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등졌기 때문이다. 신씨는 배우자의 휴대전화를 뒤져 남자관계를 추궁하는 등 피해자가 ‘간통’ 고소 없이 혼인생활을 포기하도록 상황을 조장하기도 했다. 딸이 사망하자 B씨는 신씨와 A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수원지방법원은 2015년 2월 16일 신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6개월과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신씨는 같은 해 7월 항소심에서 간통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판결이 나온 열흘 뒤 헌법재판소(헌재)가 ‘간통죄’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뉴스1

헌법재판소./뉴스1

당시 헌재는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241조를 살펴보고 있었다. 형법 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법 조항이다. 그와 간통을 한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2010년 10월 유부남과 의정부시 한 모텔에서 이틀에 걸쳐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된 심모씨 항소심을 심리하던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부는 직권으로 헌재에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법원에서 재판 중인 소송 사건에서 법원의 직권 또는 소송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해당 사건에 적용될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해 줄 것을 헌재에 제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 5년간 ‘간통죄’ 조항을 들여다본 헌재는 2015년 2월 26일 “일부일처제 혼인제도를 보호하고 부부 사이에 정조의무를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신씨는 ‘사법연수원 불륜남’이라는 범죄자 꼬리표를 뗐다. 다만, 사법연수원이 징계위원회를 열어 신씨에게 파면 처분을 내리면서 법조인이 되지는 못했다.

◇5번이나 헌재로 간 ‘간통죄’…62년 만에 결국 폐지

간통죄는 헌재가 5번이나 심리할 만큼 제정 이후 줄곧 ‘뜨거운 감자’였다. 헌재는 1990년 9월 10일 첫 심리에서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부부간 성적(性的) 성실의무를 지키기 위해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며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1993년 3월, 2001년 10월, 2008년 10월에도 헌재는 간통죄가 합헌으로 봤다.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241조는 1953년 제정됐다. 당시 남녀를 동등하게 간통으로 처벌하는 간통죄 규정을 마련한 정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112명 중 57명 찬성을 얻어 1표 차이로 통과됐다. 반백 년 간통 처벌 역사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연예인과 기업인도 ‘간통죄’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2006년 5월 말부터 같은 해 7월 초까지 팝페라 가수와 간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옥소리씨는 2008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팝페라 가수 역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가 내려졌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건을 낳았던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 결국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 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국가가 간통을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고 밝혔다.

불륜 조장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의 CEO가 사퇴했다./조선DB

불륜 조장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의 CEO가 사퇴했다./조선DB

◇외도 현장 급습하는 경찰 대신 배우자가 손해배상 청구 가능

간통죄 폐지로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는 수사기관 도움으로 이혼소송에 사용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경찰이 외도 현장을 급습해 불륜을 저지른 이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간통죄 입증 증거로 정액이 묻은 콘돔을 찾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소위 ‘바람’을 펴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도 다소 달라졌다. 간통죄가 폐지된 당일 콘돔 생산업체인 유니더스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전일보다 405원(14.92%) 오른 3120원에 거래되고, 거래량도 300만주를 넘어서며 전일 거래량의 10배로 상승했다. 간통죄 폐지 ‘테마주’로 엮인 결과다. 특히 ‘짧은 인생, 바람을 피우세요’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운 해외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이 한국에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물론 간통죄가 폐지됐더라도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외도를 저지르면 민사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현행법에서도 ‘바람을 피는 행위’는 불법이다.

‘사법연수생 불륜남’ 신씨 외에도 간통 혐의를 받던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간통죄로 수사나 재판받고 있던 1770명이 혐의를 벗었으며 간통죄로 수감돼 있던 9명이 석방됐다. 수사를 받건 598명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2008년 10월 이후 재판을 받았던 약 5000명 중 유죄로 인정된 약 3000명이 재심을 청구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위헌 결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고, 전과도 없앨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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